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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도서관에서 빌려보다가 이 참에 한 권 구입하자 싶어서구입을 하게 됐네요. 트뤼포에 대한 추억이라면 어릴 적공중파 영화 프로그램 시간에 종종 방영해줬다는 것 정도?당시엔 감독이 누군지 배우가 누군지도 모르고 대충 보다가잠들던 때였는데 나중에 커서 트뤼포 영화를 좀 보려고 했더니이게 국민학교 시절 이미 tv에서 꽤 해줬던 영화라는 게 상당히 재미있게 다가왔던 부분이었네요. 명화극장은 좋은 프로그램이었구나.;;;당사자가 생존해서 자기 영화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해주는 걸선호하는데 아쉽게도 이미 고인이 되셨고 다른 전문가들의글을 통해 이렇게나마 접할 수 있어서 위로가 됩니다.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누벨바그’는 영화사적으로 클래식과 모더니즘이라는 의미를 일궈내며 사회ㆍ문화적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영화운동이다. 스타 중심주의 영화와, 정치적 도구로 예술을 이용하는 프랑스 영화계의 ‘구시대적 물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던 이 운동은 당시 프랑스의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젊은 작가들의 중심에는 장 뤼크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가 있었으며, 특히 트뤼포 감독은 1959년 자전적 데뷔작이자 칸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로 바로 이 ‘새로운 물결’의 시대를 열었다.

영화 평단에서 ‘무서운 아이’, ‘저널리즘의 불한당’과 같은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트뤼포는 당시 프랑스 영화가 ‘고품격의 전통’만을 중시하며 시나리오 작가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며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는 곧 젊은이들의 현실에 밀착된 주제, 적은 제작 인원과 저예산의 신속한 촬영 등 연기자, 제작, 촬영 방법의 근본적 혁신에 대한 요구, 즉 ‘독립적 작가’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트뤼포의 작품은 어떤 정치적ㆍ상업적 목적 때문에 과장되거나 위선으로 넘쳐난 기교를 부리지 않았으며, 단지 그의 삶이 곧 영화였고 영화가 곧 트뤼포 자신이 될 뿐이었다. 부모와 원만하지 못했던 관계로 비행 소년으로 자라면서 학교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그래서 제도권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직 영화에 대한 맹렬한 사랑만을 가슴에 품고, 자신의 인생이라는 텍스트를 질료로 하여, 영화로 영화를 배우고 모든 것을 영화 안에서 말할 뿐이었다.

자본의 논리에 빠져 영화가 예술이 아니고, 감독이 시네아티스트가 아닌 오늘에, 트뤼포의 예술세계와 삶은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그는 내일의 영화는 모험가들이 만들 것이다 라고 말했다. 누벨바그의 영원한 거장 트뤼포의 이와 같은 정신은 바로 우리 시대에 그의 영화와 삶을 재발견해야 하는 이유이다.


추천사(정성일_영화평론가)
옮긴이의 글
머리말

1. 비밀 속의 어린 시절, 1932~1946
2. 400번의 구타, 1946~1952
3. 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었다, 1952~1958
4. 새로운 물결, 1958~1962
5. 정체기, 1962~1967
6. 숨겨진 생활, 1968~1970
7. 영화 인간, 1971~1979
8. 미완의 초상, 1979~1984

감사의 말
필모그래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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