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읽는 삶 78‘나쁜 경제개발’에 사로잡힌 한국― 나쁜 초콜릿샐리 그랜들리 글정미영 옮김봄나무 펴냄, 2012.1.25. 옛사람이 나무를 살뜰히 아낀 마음을 헤아립니다. 옛사람이 나무로 집을 지은 마음을 돌아봅니다. 옛사람이 집과 마을에 숲정이를 두고, 집과 마을은 언제나 숲 옆에 마련한 마음을 되새깁니다. 잘 자란 나무를 보면 곧게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습니다. 잘 자란 나무는 이백 해나 삼백 해를 묵으면, 또는 오백 해나 즈믄 해를 묵으면, 고맙게 베어서 기쁘게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잘 자라지 못한 나무는 집을 지을 적에 못 씁니다. 잘 자라지 못한 나무는 장작으로 패서 땔감으로는 쓸 테지요. 그러나, 잘 자라지 못한 나무는 장작으로 패기에도 수월하지 않아요. 잘 자란 나무여야 기둥으로도 삼고 장작으로도 삼습니다... 누군가가 파스칼에게 커서 하고 싶은 일을 물을 때면, 파스칼은 집 짓는 사람이나 기술자처럼 손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 파스칼에겐 전쟁이 너무 먼일처럼 여겨졌다. 이 마을에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친구거나 어떤 식으로든 서로 얽혀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 (18, 22∼23쪽) 오늘날 사회를 보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나무를 안 아낍니다. 나무가 곧게 잘 자라도록 하는 사람이 무척 드뭅니다. 나뭇가지를 휘거나 나뭇줄기를 뭉텅뭉텅 자르기 일쑤입니다. 이른바 ‘조경’이나 ‘원예’나 ‘분재’라는 이름을 빌어, 나무가 나무답지 못하게 손을 씁니다. 곰곰이 보면, 조경이나 원예나 분재를 하면, 이 나무는 집을 짓는 자리에서 못 쓸 뿐 아니라, 장작으로 쓸 수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멋스러울는지 모르지만, 동물원에 갇힌 짐승과 같구나 싶습니다. 나무를 왜 심을까요. 나무를 왜 곁에 둘까요. 나무를 왜 바라볼까요. 나무가 왜 있어야 할까요. 나무는 사람 곁에서 무슨 구실을 하나요.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은 어떻게 사나요... 파스칼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데 넌더리가 났다. 괴롭힘을 당하고, 멸시를 받고, 홀대받고, 위협을 당하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 올리비에가 소리쳤다. “파스칼, 어서 가야 해. 저들이 우리도 죽일 거야.” 파스칼이 울부짖었다. “아빠!” … 하루하루를 그냥 터벅터벅 걸어왔다. 하지만 이젠 파스칼 안의 무언가가 일깨워지고 있었다. 마지못해 시키는 일을 하면서 귀한 세월을 헛되이 흘려보내는 멍청한 짓을 되풀이하진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 (40, 88∼89, 149쪽) 한국사람이 나무를 쓸 적에는 으레 다른 나라에서 나무를 사들입니다. 한국에서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스스로 자란 나무를 얻어서 쓰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곧고 아름답게 자라는 나무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나날이 숲이 사라지고, 그나마 있는 숲도 공무원이 자꾸 솎아내기를 한다면서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나무로 짓는 집은 나무가 자란 나이만큼 튼튼히 섭니다. 나무로 짓는 집은 나무가 자란 나이가 지나면 허물어 장작으로 쓰거나 다른 자리에 씁니다. 이러면서 다른 나무를 베어 집을 짓습니다. 나무로 지은 집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면서 흙을 가꿉니다. 이와 달리 시멘트로 짓는 집은 시멘트를 부어서 들인 겨를만큼 한 자리에 섭니다. 그리고, 시멘트집은 나중에 모조리 쓰레기로 바뀝니다. 억지로 뒤섞어 억지로 올린 시멘트집은 백 해조차 가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쓰레기를 낳으면서 흙을 망가뜨립니다. 시멘트로 지은 집뿐 아니라 시멘트를 부어 닦은 길도 몽땅 쓰레기입니다. 아스팔트를 부어 닦은 길도 죄다 쓰레기입니다... ‘내가 코조까지 신경 쓰진 않아도 돼. 코조도 스스로 자길 보살필 줄 알아야 해.’ 파스칼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친구만 여기 남겨 두고 떠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코조는 파스칼을 의지했고, 집에 남은 자기 형처럼 파스칼을 따랐다. 둘이선 많은 일을 함께 겪었고, 만약 파스칼이 없다면 코조는 돼지 마왕의 동쌀에 못 배겨 날 것이 분명했다 .. (130∼131쪽) 샐리 그랜들리 님이 쓴 《나쁜 초콜릿》(봄나무,2012)을 읽습니다. 이 책은 ‘나쁜 초콜릿’을 말하는 듯하면서도, 무엇이 나쁜지 따로 밝히거나 드러내지 않습니다. 카카오콩이 나는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얼마나 고달프거나 괴롭거나 아픈가 하는 이야기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카카오콩을 다루는 어른이 돈을 그러모으려고 어떤 짓을 하는지 가만히 보여줍니다.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어버이와 어른은 틀림없이 있는데, 이와 함께 아이를 사랑으로 마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인 이녁을 스스로 바보처럼 굴리는 어른도 제법 많습니다... 반군을 잡는 것, 반군을 쫓는 것, 그것이 곧, 반군에게 총을 쏘는 것? “발사!” 그리고 지시가 이어졌다. “자, 뛰어. 달리면서 움직이는 건 닥치는 대로 쏴라. 저들이 죽거나 너희가 죽거나 둘 중 하나다.” 파스칼의 어깨에 투박한 손이 닿았고, 파스칼을 거의 넘어뜨리다시피 앞으로 밀쳤다 … 파스칼은 셉이 들려주는 말을 거의 믿지 않았다. 정신이 말똥말똥한 순간이면, 파스칼은 셉과 그 패거리가 벌이는 일의 목적을 의심했다. 파스칼은 여자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었다. 아이들의 울부짖음도 들었다. 그 사람들이 과연 반군의 가족일까? 반군은 자기들이 하려는 일의 명분이 가족의 목숨보다 소중하단 걸까 .. (157, 168쪽) 아프리카에 총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과 중남미에도 총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지구별 어디에도 ‘국경’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곳과 저곳이 이 나라와 저 나라로 갈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치꾼이 있대서 나라가 갈려야 하지 않습니다. 군대와 전쟁무기가 있으니 나라가 나뉘어야 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거머쥔 어른이 하는 짓은 언제나 부질없습니다. 이들, 권력쟁이 어른은 총칼을 내세워 서로서로 바보가 됩니다. 서로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지 않고, 서로서로 바보가 되지요. 내 나라가 더 세다고 우쭐거리고, 네 나라는 손쉽게 잡아먹을 만하다고 윽박지릅니다. 내 나라에 전쟁무기가 더 많다고 거들먹거리고, 네 나라는 가볍게 쳐들어갈 만하다고 으르렁거립니다. 일본은 한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왔고, 한국도 일본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갔습니다. 중국도 한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왔지만, 한국도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중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갔습니다. 이런 짓을 왜 해야 했을까요. 이런 짓을 무슨 까닭으로 해야 했을까요. 정치권력자 몇몇 때문에 여느 시골사람이 왜 싸울아비가 되어 낯선 벌판에서 왜 피를 흘리며 죽어야 했을까요...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누가 알겠어? 그리고 무슨 상관이야? 이 트럭에서 내리기만 하면, 우리는 자유야. 하고싶은 걸 마음껏 할 자유!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설 자유!” “엉덩이가 얼얼해.” … 코조가 문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네가 꿈을 꾸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말했잖아.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넌 결코 희망을 버린 적이 없었어.” 파스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난 한때 희망을 버렸었어. 내가 악몽만을 꿨던 그 시간 동안 말이야.” .. (222, 223쪽) 모든 정치권력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대통령과 정치꾼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대재벌이나 다국적기업도 정치권력이고, 모든 군부대도 정치권력입니다. 모든 지식인도 정치권력입니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모든 어른은 정치권력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권력이 되면 어른과 아이가 따로 없이 바보짓으로 빠져듭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으면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으니 정치권력 바보짓에 얽매이고, 사랑을 가슴에 품을 때에 흙을 가꾸어 숲을 이루면서 마을살이를 북돋웁니다. ‘나쁜 초콜릿’은 아프리카에 있다면, 한국에서는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이라는 허울이 있었지요. 한국에서는 ‘나쁜 새마을운동’과 ‘나쁜 경제개발’이 춤을 추지요. 왜냐하면, 이런 운동과 저런 개발에는 오로지 ‘돈’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이 우리를 먹여살렸다는 거짓말을 일삼는 어른이 꽤 많은데, 사람은 ‘돈’으로 먹고살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먹고삽니다. 아니, 사람은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람답게 삽니다.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아예 없던 지난날에 사람들은 서로 ‘이웃사촌’이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하나도 모르던 지난날에 사람들은 서로 나누면서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을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조금도 없던 지난날에 사람들은 언제나 노래하고 언제나 웃고 춤추면서 언제나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은 신문과 방송과 책과 스포츠와 영화와 섹스와 문학과 학교교육 따위를 낳았습니다. 자, 오늘날 이 한국 사회에서 즐겁게 웃으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일터에 가는 어른은 몇이나 있는지요? 오늘날 이 한국 사회에서 즐겁게 웃으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서 동무들과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아이는 몇이나 있는지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어른도 아이도 웃음이나 노래나 춤이나 이야기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꿈과 사랑이 하나도 없는 한국 사회입니다. 직업훈련과 대학입시만 있는 한국 사회입니다. ‘나쁜 초콜릿’은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에는 어떤 ‘나쁜 것’이 있습니까. 4348.1.6.불.ㅎㄲㅅㄱ(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초콜릿, 이게 다 돈이야.
달콤한 초콜릿에 숨은 진실…… 과연 무엇일까?
「봄나무 문학선」 시리즈의 새 책 나쁜 초콜릿 은 아프리카에 사는 두 아이 파스칼과 코조의 삶을 주축으로, 초콜릿에 숨은 진실을 들려줍니다.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의 아동 인권 실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며,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계속되는 내전이 기니에 살던 한 어린이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연을 절절하게 전합니다. 달콤하게만 느껴지는 초콜릿을 왜 나쁘다고 하는지,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세계 곳곳의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에 깊이 천착해 온 샐리 그린들리는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그들 앞에 놓인 삶의 문제에 관심의 초점을 모읍니다. 샐리 그린들리는 서글프고도 호소력 짙은 어조로 파스칼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 들려주면서 독자들을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속으로 이끕니다. 수줍음 많고 여린 아이였던 파스칼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거친 소년이 되기까지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서서히 베일을 벗고 드러나는 파스칼의 과거에는 서아프리카의 굴곡진 역사 위에서 한 어린이가 맞닥뜨려야 했던 치열한 운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부터 아동 노동과 공정 무역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담긴,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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